
눈부신 한강의 기적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친척분께서 카톡 선물하기로 보내주신 제품. 사실 현금 다발로 받았지만ㅋㅋ(곧 신사임당 한 장) 거두절미하고 엣지 있는 팔레트 골드 케이스부터 나 스틸라예요, 라며 외치고 있음 ㅋㅋ 벨벳 재질 파우치와 마치 생일 선물 받는 것 같은 서투른 소녀 감성 그득한 포장까지. 엄청 신경 쓴 게 티가 남. 받는 사람마저 연어빛 뺨을 띠며 수줍은 미소가 덧그려진다.
다섯 가지 정직하지만 활용도 높은 일상 색상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진짜 수플레 느낌의 베이스용 칸 크기가 꽤 차지하므로 그들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미지근한 온도감을 담은 색감들이 조명에 따라 잔잔하게 비춘다. 넋놓고 보기만 해도 한강의 올곧은 기운이 쨍히 느껴진다. 고즈넉이 햇빛이 사방에서 뻗어나가는 빛줄기들. 한강 위로 서로 깨지고 부딪히며 부스럭거리는 윤슬. 그리고 그 풍경을 응시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나 자신의 어린 모습과 감정들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했나 보다. 옆으로 갈수록 깊이감 있는 음영과 입체감 잇는 채도가 고급지다. 잔펄이 고르게 흩어져 있어 자칫 검무르고 칙칙해질 수 있는 명도감을 조화롭게 풀어준다.
여기선 플럼 브라운이 제일 흥미로웠다. 다른 네 색상들은
태양과 밀접된 계열들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플럼빛 진한 고동색이 좀 의아하실 수 있다. 그러나 워낙 나머지들이 눈부시고 뜨거운 느낌이라서 플럼브라운을 마무리로 발라주면 더위를 식혀주는 느낌이 든다. 한결 차분하게 눌러주는 모양새. 또한 줄줄이 간격 맞춘 가로등 고요한 불빛 사이로 어스름해지는 시간을 잘 표현해줬다고 본다. 석양에 가려진 물결 그림자들이 요동치는 그 순간을 감상하는 이 기분. 어쨌든 가벼운 스모키 음영이나 아이 라이너 대신 사용해주기 좋다. 이게 바이올렛 감도 미세하게 두드러져서 도회적 고급미 엄청남.
수플레베이지+ 코코아로 베이스 깔고 피치카라멜을 눈 중앙에 펴올린 뒤, 플럼브라운 찍어 눈 뒤쪽 막아주고 마지막 샴페인 골드로 눈 앞머리와 애교살에 채워주니 한 폭의 눈화장 완성작 완전 가능이죠. 발색도 선명하고 덧칠해도 무겁고 텁텁함이 없어서 어디 여행갈 때 이거 하나만 가지고 다녀도 선방하겠다. 이전에 스틸라 매트앤메탈 팔레트 질이 별로란 소릴 들은 적이 있어 솔직히 큰 기대 없었는데 한강 선셋이나 블루 벨벳이나 품질 무난했다. 역시나 눈 화장 전문점 스틸라 다움. 색상들 실물이야 뭐. 얘네 스틸라야. 브랜드가 곧 자부심인 애들임. 지속력도 최소 중간은 간다. 따뜻하지만 살짝 차게 붉어서 딥겨쿨인 내가 써도 이상하지 않았다. 웜톤 화장은 다 튕겨낸다 웜톤 철벽 방어자들만 아니면 피부톤에 크게 구애 받지 않을 듯. 같이 딸려 있는 미니 브러쉬 질도 막 쓰기 괜찮음.
끝으로 전체적인 소감을 짧게 하자면 스틸라 고심스런 작품 한강선셋은 왜인지 치기 어린 청춘을 무심코 지나치는 중인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한강 선셋 멍하니 쳐다보는데 울적하면서도 원시 생명적인 느낌을 받음. 한 번 새벽에 물이 찬 한강 생각하면서 한강선셋 구경해보셈. 센치해지고 멜랑콜리로 마음 싱숭생숭해짐. 더욱이 회색 도시로 변질되는 요즘, 스틸러가 컨셉 방향을 잘 잡은 듯. 단독 카톡 선물하기 한정판인 걸로 알고 있음. 팔레트 크기 대비 가격대는 세지만 선물용으로 안성맞춤이니 그대들도 사람하는 사람들에게 스틸라 한강 선셋으로 마음과 정성을 전해보세요.
새파란 우리들 기억 속에서도 제2의 한강 기적이 나부끼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다들 부디 행복하세요. 아프지 말고.